촛불과 대의민주주의
이상돈 (2008년 7월 20일,중앙대 이상돈 교수 , 홈페이지)
지난 7월 17일은 제헌헌법 60주년이었지만, 별다른 행사도 없이 지나가고 말았다. 제헌절 전후해서 몇몇 신문에는 원로 법학자의 시론이 실렸다. 그 중에는 촛불 시위가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를 저해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촛불 시위로 인해 대통령이 정책을 180도 바꾸어 쇠고기 협상을 추가로 하고 운하를 건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국민의 대표기관이라는 국회는 허수아비로 전락한 것이 분명하다. 그 점에서 ‘촛불’은 대의민주주의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명색이 보수주의자인 나는 ‘대의민주주의’를 생명처럼 존중해야 한다. 정치사상(政治思想)적으로 볼 때 보수주의는 광란(狂亂)의 프랑스 혁명을 보고 그런 일이 영국에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를 기원으로 삼는다. 버크는 영국에 대의민주정치가 정착해서 프랑스 혁명 같은 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1950년대 초, 미국에서는 이미 죽은 것으로 생각되었던 보수주의를 다시 발굴해서 생명을 불어넣은 러셀 커크(Russell Kirk)는 버크의 대의민주주의를 보수주의의 덕목으로 삼았다.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나는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했었다”
그러나 나는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대의민주주의’를 지독히 불신하고 부정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노무현 정부 당시 국회가 과반수 의결로 합법적으로 통과시킨 사립학교법, 신문관련법, 증권집단소송법 등 노무현 정부의 모든 중요한 정책을 반대했다. 신문 잡지에 반대하는 글만 쓴 것이 아니라 국민행동본부가 개최한 노무현 정부 규탄 대회에도 참석했다.
나는 또한 국회가 과반수 의결로 통과시킨 사립학교법 개정법에 반대하기 위해 추운 겨울에 장외투쟁에 나섰던 박근혜 대표를 심적으로 지지했다. 노무현 정권 5년 내내 나는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했던 것인데, 촛불 시위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는 보수진영의 다른 인사들도 이 점에선 나와 다를 바가 없다.
‘대의민주주의에 켜진 적신호(赤信號)’
그리고 드디어 이명박 정권이 등장했다. 4월 총선에선 한나라당이 압승했다. 하지만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전체 유권자의 30%의 지지를 받는 데 그쳤고, 18대 총선의 투표율은 46%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대의민주주의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그러나 집권세력은 오만하기만 했다. 이재오 등 운하론자들이 낙선했음에도 운하를 계속 건설한다고 했고, 건설회사들은 콘소시엄을 결성해서 무언가 일을 시작했다. 정부는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맞추어서 쇠고기 협상을 성급하게 매듭지었다.
2008년 4월부터 6월까지
4월 9일, 미국 버지니아 주립대학의 학생이던 애리사 빈슨이란 22살 밖에 안된 여성이 병원에서 사망하자, 현지 신문은 그녀가 변종 야곱병(인간 광우병 : vCJD)으로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4월 17일, 부시 대통령과의 캠프 데이비드 회동을 앞둔 이명박 대통령과 우리의 외교장관, 외교안보수석 등은 미국 상공회의소 초청 오찬에서 몬태나산(産) 스테이크를 즐겼다.
5월 중순 들어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여학생들의 촛불 집회는 갈수록 규모가 커져갔다. 5월 21일, 이명박 대통령은 “강(江)을 하수구인 양 쓰는 곳은 우리나라 말고는 없다”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운하 공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5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은 쇠고기 수입협상에서 국민의 이해를 구하지 못한데 사과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대통령의 사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촛불 시위는 커져만 갔고, 6월 6-7일에 최고조를 이루었다. 6월 10일 ‘100만 촛불’ 사태로 발전했고,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6월 19일 특별기자회견을 열어 쇠고기 추가협상을 하고 국민이 원하지 않는 운하 건설은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이 보다 일주일 전인 6월 12일, 미국의 질병통제센터(CDC)는 애리사 빈슨이 인간광우병이 아닌 야콥병(CJD)으로 사망했다는 최종 부검결과를 발표했다.
무엇이 ‘촛불’을 야기했나 ?
정상적인 통상 공무원이라면, 지난 4월 9일에 애리사 빈슨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온 후에는 그녀의 사인(死因)이 확인되기까지 협상을 중단했어야 했다. 가급적이면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상대방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야 하는 통상 외교관에게 빈슨의 사망은 호재(好材)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맞추어 협상을 졸속 타결시키고 말았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있겠는가.
만일에 정부가 미국 질병통제센터의 최종 판단이 나온 6월 12일 이후에 쇠고기 협상을 매듭지었더라면 촛불 시위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출범한지 100일 밖에 안 된 정부가 ‘식물 정권’이라는 말을 듣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MBC의 ‘PD 수첩’은 그것이 과장이고 왜곡이더라도, 여하튼 6월 12일 전에 제작 방송한 것이다.
나는 MBC의 광우병 보도를 두둔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지금 정부가 하는 일은 자신들이 저지른 정책적 과오에 대한 책임을 다른 데로 전가(轉嫁)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정부가 ‘촛불 사태’는 전적으로 MBC가 퍼트린 ‘거짓’ 때문에 발생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6월 19일 대국민 사과를 취소하고 운하 건설도 추진해야 할 것이 아닌가.
위기에 처한 ‘대의민주주의’
‘촛불’이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일종의 ‘중우정치(衆愚政治)’라는 주장은 물론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쇠고기 협상이 과연 잘 한 것인가”, “한반도 운하는 건설해도 되는 것인가”를 묻고 싶다.
만일 이 두 개의 질문에 모두 긍정적으로 답변하지 못한다면, ‘촛불’이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의 대의민주주의 자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끝)
(출처 : 이상돈닷컴(leesangdon.com))
이상돈 (2008년 7월 20일,중앙대 이상돈 교수 , 홈페이지)
지난 7월 17일은 제헌헌법 60주년이었지만, 별다른 행사도 없이 지나가고 말았다. 제헌절 전후해서 몇몇 신문에는 원로 법학자의 시론이 실렸다. 그 중에는 촛불 시위가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를 저해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촛불 시위로 인해 대통령이 정책을 180도 바꾸어 쇠고기 협상을 추가로 하고 운하를 건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국민의 대표기관이라는 국회는 허수아비로 전락한 것이 분명하다. 그 점에서 ‘촛불’은 대의민주주의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명색이 보수주의자인 나는 ‘대의민주주의’를 생명처럼 존중해야 한다. 정치사상(政治思想)적으로 볼 때 보수주의는 광란(狂亂)의 프랑스 혁명을 보고 그런 일이 영국에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를 기원으로 삼는다. 버크는 영국에 대의민주정치가 정착해서 프랑스 혁명 같은 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1950년대 초, 미국에서는 이미 죽은 것으로 생각되었던 보수주의를 다시 발굴해서 생명을 불어넣은 러셀 커크(Russell Kirk)는 버크의 대의민주주의를 보수주의의 덕목으로 삼았다.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나는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했었다”
그러나 나는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대의민주주의’를 지독히 불신하고 부정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노무현 정부 당시 국회가 과반수 의결로 합법적으로 통과시킨 사립학교법, 신문관련법, 증권집단소송법 등 노무현 정부의 모든 중요한 정책을 반대했다. 신문 잡지에 반대하는 글만 쓴 것이 아니라 국민행동본부가 개최한 노무현 정부 규탄 대회에도 참석했다.
나는 또한 국회가 과반수 의결로 통과시킨 사립학교법 개정법에 반대하기 위해 추운 겨울에 장외투쟁에 나섰던 박근혜 대표를 심적으로 지지했다. 노무현 정권 5년 내내 나는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했던 것인데, 촛불 시위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는 보수진영의 다른 인사들도 이 점에선 나와 다를 바가 없다.
‘대의민주주의에 켜진 적신호(赤信號)’
그리고 드디어 이명박 정권이 등장했다. 4월 총선에선 한나라당이 압승했다. 하지만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전체 유권자의 30%의 지지를 받는 데 그쳤고, 18대 총선의 투표율은 46%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대의민주주의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그러나 집권세력은 오만하기만 했다. 이재오 등 운하론자들이 낙선했음에도 운하를 계속 건설한다고 했고, 건설회사들은 콘소시엄을 결성해서 무언가 일을 시작했다. 정부는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맞추어서 쇠고기 협상을 성급하게 매듭지었다.
2008년 4월부터 6월까지
4월 9일, 미국 버지니아 주립대학의 학생이던 애리사 빈슨이란 22살 밖에 안된 여성이 병원에서 사망하자, 현지 신문은 그녀가 변종 야곱병(인간 광우병 : vCJD)으로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4월 17일, 부시 대통령과의 캠프 데이비드 회동을 앞둔 이명박 대통령과 우리의 외교장관, 외교안보수석 등은 미국 상공회의소 초청 오찬에서 몬태나산(産) 스테이크를 즐겼다.
5월 중순 들어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여학생들의 촛불 집회는 갈수록 규모가 커져갔다. 5월 21일, 이명박 대통령은 “강(江)을 하수구인 양 쓰는 곳은 우리나라 말고는 없다”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운하 공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5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은 쇠고기 수입협상에서 국민의 이해를 구하지 못한데 사과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대통령의 사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촛불 시위는 커져만 갔고, 6월 6-7일에 최고조를 이루었다. 6월 10일 ‘100만 촛불’ 사태로 발전했고,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6월 19일 특별기자회견을 열어 쇠고기 추가협상을 하고 국민이 원하지 않는 운하 건설은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이 보다 일주일 전인 6월 12일, 미국의 질병통제센터(CDC)는 애리사 빈슨이 인간광우병이 아닌 야콥병(CJD)으로 사망했다는 최종 부검결과를 발표했다.
무엇이 ‘촛불’을 야기했나 ?
정상적인 통상 공무원이라면, 지난 4월 9일에 애리사 빈슨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온 후에는 그녀의 사인(死因)이 확인되기까지 협상을 중단했어야 했다. 가급적이면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상대방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야 하는 통상 외교관에게 빈슨의 사망은 호재(好材)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맞추어 협상을 졸속 타결시키고 말았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있겠는가.
만일에 정부가 미국 질병통제센터의 최종 판단이 나온 6월 12일 이후에 쇠고기 협상을 매듭지었더라면 촛불 시위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출범한지 100일 밖에 안 된 정부가 ‘식물 정권’이라는 말을 듣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MBC의 ‘PD 수첩’은 그것이 과장이고 왜곡이더라도, 여하튼 6월 12일 전에 제작 방송한 것이다.
나는 MBC의 광우병 보도를 두둔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지금 정부가 하는 일은 자신들이 저지른 정책적 과오에 대한 책임을 다른 데로 전가(轉嫁)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정부가 ‘촛불 사태’는 전적으로 MBC가 퍼트린 ‘거짓’ 때문에 발생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6월 19일 대국민 사과를 취소하고 운하 건설도 추진해야 할 것이 아닌가.
위기에 처한 ‘대의민주주의’
‘촛불’이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일종의 ‘중우정치(衆愚政治)’라는 주장은 물론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쇠고기 협상이 과연 잘 한 것인가”, “한반도 운하는 건설해도 되는 것인가”를 묻고 싶다.
만일 이 두 개의 질문에 모두 긍정적으로 답변하지 못한다면, ‘촛불’이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의 대의민주주의 자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끝)
(출처 : 이상돈닷컴(leesangdon.com))